베르톨트 브레히트, 영아살해자 마리 파라르에 관하여

2021. 8. 31. 13:09감상/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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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파라르, 4월 태생, 미성년자,

  구루병, 고아인 것 빼고는 드러낼 게 없는 여자,

  지금까지 책잡힐 일 없이 살아왔다는 그녀가

  한 아이를 살해했다 주장한다.

  임신 2개월째 접어들었을 때 벌써

  여자 주인집 어느 지하실에서

  두 번의 주사로 아이를 떼려고 했다 한다.

  고통스러웠으나 아이는 안 나왔다 한다.

  그대들에게 청하노니, 분노하지 말기를,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2

  파라르는 저지른 일에 대해 동등한 대가를

  치렀다 한다. 계속 허리띠를 졸라맸으며

  소주에 후추를 갈아 마시기도 했다 한다.

  전혀 소용이 없었다 한다.

  당시 아직 성장 중이던 파라르,

  마리아에게 기도하며 많이 의지했다 한다.

  그대들에게 청하노니, 분노하지 말기를,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3

  보기에 기도들은 소용없는 듯했다.

  지나친 요구였는가. 몸은 더 불었고

  파라르는 새벽 미사 때 어지러움을 느꼈다. 제단으로

  갈 때 자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중에 애가 태어날 때까지 그러나

  아무 말도 하면 안 됐다.

  그럴 것이 아무도 믿지 않았을 터, 매력 하나 없는

  파라르가 유혹에 걸려들었다니?

  그대들에게 청하노니, 분노하지 말기를,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4

  그날 이른 새벽이었다 한다.

  계단 청소를 하던 중, 손톱이 배를 할퀴는

  것 같았다. 몸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고통을 내세울 수 없었다.

  빨래를 널면서 하루 종일 파라르는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아팠다. 마침내

  아이를 낳아야 할 때가 온 것, 그녀의 가슴 언저리가

  금방 무거워졌다. 저녁 늦게서야 그녀는 위층에 올라갔다.

  그대들에게 청하노니, 분노하지 말기를,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5

  누워 있는데 파라르는 한 번 더 불려 갔다.

  눈이 내렸고 그녀는 눈을 치워야 했다.

  돌아오니 11시였다. 정말 긴 하루였다.

  한밤중에야 그녀는 편히 출산할 수 있었다.

  파라르는 아들을 낳았다 말한다.

  다른 아들들과 같은 아들이었다.

  그렇지만 파라르는 다른 엄마들과 같은 엄마는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내가 그녀를 비난할 이유가 없으니.

  그대들에게 청하노니, 분노하지 말기를,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6

  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계속 설명하려고 한다.

  (파라르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겠다 했다.)

  내가 누구고 네가 누군지 사람들이 알게 하련다.

  파라르가 잠깐 침대에 있을 때 심한

  산욕이 엄습했다 한다. 혼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소리를 안 지르려 무진 애썼다 한다.

  그대들에게 청하노니, 분노하지 말기를,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7

  방이 몹시 추웠으므로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거의 기다시피 변소로 가서

  거기서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바로

  애를 낳았다 한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한다.

  파라르는 전혀 정신이 없었고

  몸이 반쯤 언 까닭에

  애를 추스릴 수 없었다 한다.

  하인들 변소는 눈발이 새어 들어올 정도로 엉성했다.

  그대들에게 청하노니, 분노하지 말기를,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8

  방과 변소 사이에서 ─ 그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한다. ─ 애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파라르는 아주 화가 나서

  두 주먹으로 애가 조용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마구 때렸다 한다.

  죽은 애를 자신의 침대에 바로 데려와서

  남은 밤을 보냈다 한다.

  아침에는 세탁실에 숨겼다 한다.

  그대들에게 청하노니, 분노하지 말기를,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9

  4월에 태어나 마이센의 감옥에서 죽은

  마리 파라르가, 유죄가 확정되어

  세상을 뜬 미혼모 마리 파라르가, 그대들에게

  피조물의 나약함을 증명하려고 한다.

  깨끗한 분만 침대에서 애를 낳고

  임신한 배에 '축복한다' 말하는 그대들이여,

  타락한 자, 약한 자들을 저주하지 말기를.

  죄가 무거웠으나 고통도 컸도다.

  그대들에게 청하노니, 분노하지 말기를,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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