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만년필 쓰는 사람 선물 추천 / 만년필 입문 - 노트 고르기
만년필에 입문하는 사람 대부분이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만년필은 만년필용 노트를 써야 한다는 것.
사실 어느 노트건 처음부터 '만년필용'으로 만드는 경우는 적겠지만, '만년필용'으로 꼽히지 않는 노트를 쓸 경우 잉크가 다 번져 처참한 몰골을 보게 됩니다. 해서 저는 제게 'n만 원대 만년필'을 추천해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예산을 노트와 잉크와 펜에 나눠 쓰도록 권하는 편입니다.
만년필을 쓰는 사람을 위한 선물을 찾는 사람에게도 역시 노트를 추천합니다. 여기에도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1. 저는 만년필을 선물하고 싶은데요.
→ 만년필에는 무게, 브랜드, 필감, A/S 편의성, 정품 여부(수리에 필요), 필링 매커니즘, 외관, 캡 체결 방식 등 이용자의 호오가 갈리는 옵션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이미 만년필을 쓰고 있는 사람, 그 사실을 여러분이 알 만큼 대놓고 만년필을 쓰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자기만의 미감과 취향이 있을 텐데요. 만년필은 대체로 비쌉니다. 가격대가 문제가 아닌 경우이더라도, 역시 비싼 편입니다. 여러분의 선물은 비싸서 부담스러울 뿐더러 심지어는 높은 확률로 받는 사람의 취향이 아닐 것입니다.
2. 저는 잉크를 선물하고 싶은데요.
→ 만년필과 마찬가지로 잉크에도 많은 옵션이 있습니다. 테, 색분리, 펄, 안료, 염료, 국산, 외산, 묽은 잉크, 박한 잉크, 엷은 잉크, 진한 잉크……. 취향이 아닌 잉크도 쓸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용자 입장에서 대답하겠습니다. 사실 안 씁니다. 내 취미를 신경써주는 게 고마워서 몇 번 쓰는 시늉은 하겠지만 글쎄. 안 씁니다. 저 같은 경우는 검은 잉크를 싫어합니다. 만년필 이용자치고는 유난해 보이겠지만, 사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특별한 취향도 아닙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겠지만 컬러 잉크만 쓰는 사람도 흔하고, 무채색 잉크만 쓰는 사람도 흔하거든요.
하지만 끈기 있는 여러분은 '선물 받는 사람이 컬러 잉크 또는 무채색 잉크를 사용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요? 비슷한 걸 사주면 되는 게 아닐까요?'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아끼고 자주 신는 신발, 혹은 자주 쓰는 립스틱, 자주 끼는 반지와 같은 색상/재질의 새 물건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해보세요. 원래 애용하던 것은 비슷한 색상 톤 중에서 써보고 써본 끝에 가장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 쓰는 것일지도 모르고, 색-촉감-재질 등 총체적인 면에서 가장 뛰어난 하나를 찾아 아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음에는 다른 색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잉크를 선물해도 좋은 경우는 상대방에게 브랜드, 색상 등을 지정받았을 때입니다.
논외로 저는 의미가 담긴 선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잉크의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그런 경우도 좋은 선물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요즘 잉크들은 감성적인 네이밍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선물하기도 어렵지 않고요.
노트를 추천하는 이유
앞서 만년필과 잉크 선물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대체로 취향에 부합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노트는 왜 추천하냐? 노트도 만년필이나 잉크처럼 취향이 갈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드실 텐데요.
맞는 말입니다. 만년필 이용자라면 노트 취향 역시 갖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만년필이나 잉크와 달리 노트는 겉으로 봐서는 P/F를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만년필이든 잉크든 노트든 만듦새, 즉 외관에 대한 취향이 있을 수 있는 점은 결국 똑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물성에 대한 취향이 있을 수 있는 점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노트의 경우, 일단 만년필용이기만 하다면 '이건 도저히 못 쓰겠다' 소리는 웬만큼 나오지 않는 분야이기도 합니다.(만년필과 잉크는 그렇지 않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또, 인터넷에 리뷰가 아무리 많다한들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호오를 미리 알기도 어렵기 때문에, 혹여나 손에 맞지 않는 노트를 선물받는다한들 경험치의 누적, 정보의 누적으로 어느 정도 합리화가 가능하다고나 할까요.
적어도 취향을 파악하는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부담스럽게 방 어딘가에 남아 압박을 주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취향에 맞지 않는 펜, 취향에 맞지 않는 잉크 선물보다 훨씬 낫다는 거죠.
노트는 요리로 비유하자면 '기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필수적이면서, 취향을 타긴 하지만, 어떻게든 소모는 할 수 있거든요. 우리 집에서 모종의 이유로 seed oil을 안 쓴다고 해서 영영 냉압착 올리브유만 쓰지는 않잖아요. 미리 사놓은 바 없이 기름이 다 떨어진 어느날, 집에 마침 선물받은 seed oil이 있다면 그걸 쓰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만년필 이용자에게 하는 노트 선물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언젠가 쓰일 확률이 높은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게시글에서는 이어서 노트를 고르는 방법과 조건을 설정하는 법, 거기 해당하는 노트와 그 장단점을 소개합니다. 노트는 오로지 실제로 써본 노트만 소개하며, 커미션 없이 소개하는 것이므로 바이럴을 의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노트를 고르는 방법
잉크가 번지는 게 문제라면 무조건 비싼 것, 평량이 두꺼운(높은) 것, 혹은 펜샵에서 파는 것을 고르면 되는 게 아닐까요?
아닙니다. 애석하게도 비싼 노트라고 해서, 평량이 높다고 해서, 펜샵에서 파는 브랜드라고 해서 잉크가 번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 몰스킨)
만년필이 번지지 않는 노트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그 선택지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물성으로 조건을 한정하면 대개는 한 손 안에 거뜬히 꼽히는 소수의 선택지만이 남게 됩니다.
0. 사용 목적
1. 외관
2. 촉감 - 매끌거리는 것 / 사각거리는 것
3. 필감 - 부드러운 것 / 저항감이 있는 것 / 사각거리는 것
4. 내지 양식 - 무지 / 줄지 / 방안지 / 도트 / 기타
실패하지 않는 선물/구입을 위해서 설정할 만한 조건은 이 정도입니다. 하지만 만년필 이용자가 아닌 한 촉감, 필감에 대한 기호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사용 목적 위주로 노트를 추천해 드릴 거예요.
사용 목적
대상이 만년필을 주로 어떨 때 사용하는지 생각해봅니다.
성경, 소설 등 한 권 단위의 책을 필사하고 있다면
'통필사'라고 부르는데요. 한 권 단위의 책을 필사하고 있다면 필사하는 행위만큼이나 필사본 자체에도 의미가 있을 테니 내용물을 비교적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커버가 단단한 하드커버 노트가 좋을 것입니다. 대개 한 권을 다 필사하려면 여러 권의 노트를 소모하게 되기 때문에, 통일성을 위해 같은 노트를 이후에 따로 구입하기에 쉬운 노트 또는 이미 쓰고 있는 노트와 같은 제품이 좋겠고요.
커버가 튼튼한 노트로는 아래의 제품들을 추천합니다.
[ 오롬 폴라 ]
19,000원 / 2권 34,000원
구입처 https://www.orom.co.kr/product/view.aspx?pkid=1419
장점1. 코듀로이 재질의 보들보들하고 튼튼한 커버
장점2. 내지 옵션이 있음 - 마시멜로우지 / 비세븐지
장점3. 귀퉁이 디테일이 귀여움
장점4. 금박 각인 옵션이 있음 (선물용으로 최적)
장점5. 3만 원 이상 무배로 배송 허들 낮음
단점1. 내지 옵션- 비세븐지의 경우 손기름을 타므로 손받침을 써야함
[ 동백문구점 레토리카 ]
49,000원
구입처 https://pencraft.co.kr/category/shop/28/혹은 오프라인 - 서울시 망원동 동백문구점
장점1. 양장에 금박이라는 앤틱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외관장점2. 매끄럽고 부드러운 필기감장점3. 하단 공간이 넓은 내지 양식 (만년필 필기가 어려운 영역이 비어 있어 도장을 찍는 등 자유롭게 쓸 수 있음)
단점1. 번짐이 있음, 특히 서양 M닙 이상 태필 이용자의 경우 추천하지 않음
단점2. 잉크 발색 표현이 좋지 않음
[ 무명노트 ]
6,700원~19,000원
구입처 https://smartstore.naver.com/mumyungnote
무명노트 : 네이버쇼핑 스마트스토어
만년필 전용 노트를 만드는 곳, 무명노트입니다
smartstore.naver.com
장점1. 만듦새 좋은 수제노트
장점2. 줄지의 경우 - 줄이 흐려서 필사를 다 하고 나면 무지(빈 종이)에 똑바로 글쓴 것처럼 보임. 잘 쓰는 것처럼 버프받음.
장점3. 잉크 발색도 좋음
단점1. 손기름을 탐. 손받침 깔고 필사해야 함. (손이 건조한 편이라면 괜찮음)
단점2. 6만 원 이상 구매해야 배송비 무료
[ 어프로치노트 프로, 퀄리티페이퍼 ]
12,000원
구입처 어프로치노트 스마트스토어 혹은 각종 펜샵
주의할 점 반드시 '퀄리티 페이퍼' 내지로 구입해야 함. 퀄리티 페이퍼가 만년필을 잘 견뎌요.
장점1. 만년필뿐 아니라 딥펜까지도 받아주는 듬직한 노트.
장점2. 가성비가 좋은 하드 커버
장점3. 잉크 발색도 괜찮은 편
장점4. 뒷장 비침이 아주 적은 편
단점1. 잉크 테(sheen)는 잘 안 뜸
단점2. 180도 펼쳐 쓰기엔 무리가 있음
글씨체를 교정하고 있다면
필체를 교정하고 있다면 내지 양식 중 방안지, 도트지가 유용합니다. 방안지는 우리가 아는 모눈종이이고, 도트지는 일정한 간격으로 점이 그려진 종이입니다.
방안/도트 노트로는 아래의 제품들을 추천합니다.
[ 글입다 레저부아, 그리드 ]
7,000원
구입처 https://smartstore.naver.com/wearingeul/products/4921686053
장점1. 잉크 발색이 좋은 편
장점2. 양식 상 상단부에 제목을 쓸 공간이 있어 예쁨
장점3. 모눈이 너무 진하거나 엷지 않음
단점1. 종이의 질감이 느껴지는 필기감임. 세필(가느다란 닙)을 사용하다면 우둘투둘하다고 느낄 수 있음.
[ 네뷸라 스페셜노트, 허블 도트 ]
24,750원
구입처 https://smartstore.naver.com/cafecally/products/7637997634
장점1. 튼튼하고 예쁜 커버
장점2. 잉크 발색이 좋은 편
장점3. 내 돈 주고 사기엔 다소 비싼 감이 있으나 써보고는 싶은 바로 그 가격대
단점1. 필감이 부드럽지는 않아서 취향을 탈 수 있음
[ 로디아, 내지: 도트 혹은 블럭 ]
구입처 펜샵 대부분에 입점해 있음
장점1. 구입이 쉬움
장점2. 크기가 다양함, 스프링(좌철,상철)/노트패드 등 제품도 다양함
장점3. 잉크 발색이 좋은 편
장점4. 딥펜도 어느 정도 견딤
장점5. 뒷장 비침이 심하지 않은 편
단점1. 아주 무난함
편하게 쓸 노트가 필요하다면
학생 필기, 업무용 메모 등 편하게 쓸 노트를 찾는 경우 추천합니다.
[ 로디아, 노트패드 ]
구입처 펜샵 대부분에 입점해 있음
장점1. 깔끔하게 뜯어짐
장점2. 크기가 다양함
[ 로디아, 클래식, A4, 줄지 ]
구입처 펜샵 대부분에 입점해 있음
장점1. 깔끔하게 뜯어짐
장점2. 제목 영역이 있어 한 권만 들고 다니며 필기/공부하기에 좋음
장점3. 잉크 발색이 좋은 편
장점4. 뒷장 비침이 심하지 않은 편
[ 네뷸라 노트패드 스무스 ]
9,000원
구입처 https://nebulanote.co.kr/product/detail.html?product_no=423&cate_no=105&display_group=1 혹은 텐바이텐 등 입점처
장점1. 이름처럼 부드러운 필감
장점2. 이름처럼 부드럽게 뜯어지면서 너무 쉽게 뜯어지는 불편은 없음
장점3. 휴대가 용이한 사이즈 (11x15.5cm)
장점4. 잉크 발색이 좋은 편
단점1. 접근성이 좀 떨어짐
다이어리, 플래너를 찾는다면
[ 미도리 ]
구입처 입점처 많음
장점1. 5년 일기, 행복 일기, 틈새 일기 등 다양한 테마의 일기장
장점2. 잉크 발색 표현이 좋은 편
[ 로디아 다이어리 웹플래너 ]
구입처 입점처 많음
장점1. 잉크 비침이 적은 편
장점2. 잉크 발색 표현이 좋은 편
단점1. 먼슬리가 세로형이라 귀찮음
[ 호보니치 ]
구입처 직구 추천 - https://www.1101.com/store/techo/en/
장점1. 회원가입하면 홈페이지에서 결제, 배송까지 한 번에 됨 (일본에서는 생각보다 이걸 많이 지원하지 않습니다)
장점2. 잉크 발색 표현이 뛰어난 편
단점1. 종이가 아주 얇고 매끄러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음
단점2. 뒷장 비침이 좀 있는 편
단점3. 접근성, 구매 용이성이 좀 떨어지는 편
마지막으로 덧붙이건대,
몰스킨은 만년필용으로 선물하거나 구입하지 맙시다.
(분명히 말렸음)